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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異야기]①5원짜리 복제약 팔던 사장님, 신약개발 '도전장' - 강경훈 기자




김동필 넥스팜코리아 대표 
창업 직후 IMF 찾아와, 5원짜리 소화제로 위기 넘겨
 
복제약 품질관리 강화로 땅 팔아 실험비 마련
 
지난해 312억 매출 올려, 복제약 이어 신약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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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필 넥스팜코리아 대표는 “중소제약사가 경쟁할 수 있는 핵심 역량은 결국 품질”이라고 강조했다.(사진=강경훈 기자)


 

[오송(충북)=이데일리 강경훈 기자] “내 손으로 직접 약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20년 전 창업했습니다. 하지만 창업 직후 외환위기(IMF)를 겪는 등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땅 팔아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망하지 않고 버틴 덕에 이젠 복제약(제네릭)에 이어 신약 개발에도 도전할 수 있는 체력을 갖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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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충북 오송에 위치한 넥스팜코리아에서 만난 김동필(77) 대표는 창업 동기와 함께 앞으로의 포부를 이같이 밝혔다. 성균관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1970년대 초반 국내 한 중견제약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987년 미국 제약사 스퀴브 한국법인으로 자리를 옮긴 후 1994년 스퀴브 합병사인 ‘BMS’에서 임원으로 정년퇴직했다. 그는 제약사에서 20년 이상 영업·마케팅 분야에서 일했다. 두둑한 퇴직금 덕분에 여생을 보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퇴직 후 서너달 쉬니 몸이 근질거렸다. ‘약을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는 평생의 꿈 때문이었다. “제약사에서 20년 이상 일하는 동안 약이 어떻게 개발되고 어떤 과정을 거쳐 판매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족회의에서 ‘창업하겠다’고 말하니 아내와 자식들 중 아무도 내 편을 들어주질 않았다. 그냥 여생이나 편하게 보내라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예 얼굴을 보지 말고 살자는 분위기였다.


그는 결국 일을 저질렀다. 퇴직금에 은행 대출까지 더해 총 4억원을 마련, 법인을 설립하고 충북 진천에 공장도 지었다. 1997 7월이었다. 위기는 곧바로 찾아왔다. 그해 겨울 IMF 위기가 불어닥친 것. 원·달러 환율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수입키로 했던 약의 원재료 가격이 3배로 뛰어올랐다.

그는 결국 원재료 수입을 포기해야만 했다. 창업 첫해 매출은 4000만원에 불과했다. 손실도 만만치 않았다. “공장을 만들어 놓고도 원·달러 환율 상승 여파로 원재료 살 돈이 부족해 6개월 동안 인건비 쓰며 설비 가동을 못하던 시절이었다. 섣부른 자신감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가족들은 시작한지 얼마 안 됐으니 더 늦기전에 공장을 팔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조금 더 버텨보자는 오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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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한 켠에 자리하고 있는 생산 이력 서류함. 대학 도서관을 연상시킨다.(사진=강경훈 기자)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제산제인 ‘타스나’를 만들기로 했다. 특허가 만료된 복제약(제네릭)인 타스나는 약국에서 약을 조제하던 당시 거의 필수로 쓰이던 약이었다. 하지만 당시 한 알에 5원도 안 하는 ‘싸구려’인 이유로 제약사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는 여기서 틈새시장을 발견했다.

김 대표는 동네 약국을 집중 공략했다. 그는 회사 CEO인 동시에 유일한 영업사원이었다. 타스나는 첫 달 매출 300만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입소문이 퍼지면서 1년도 안 돼 월 7000만원 매출을 올렸다. 넥스팜코리아는 지금도 타스나로 한 해 50~60억원을 벌어들인다. 김 대표는 “타스나는 창업 초기 회사가 어려울 때 버틸 수 있도록 도와준 ‘자식’과도 같은 약”이라며 “때문에 수익성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앞으로도 계속 생산·판매할 것”이라고 말했다


위기는 또 한 번 찾아 왔다. 2000년 의약분업으로 약사들의 조제권이 사라진 것. 의약분업 여파로 김 대표는 한 달 매출이 1억원에서 500~600만원으로 곤두박칠 치는 것을 뜬 눈으로 바라봐야 했다. 위기는 동시에 찾아왔다. 정부(식약처)에서 복제약 품질관리를 한층 강화하면서 약동성(의약품 동등성) 실험으로 효과를 검증받는 절차를 추가했다. 인력과 자금이 부족한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대형 제약사와 격차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생동성(생물학적 동등성) 시험까지 추가됐다. 생동성은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해야 하는데 품목당 1억원 이상 들었다. 결국 그는 ‘마지막 보루’로 여겼던 경기도 안성시 임야마저 급매해 15억원의 자금을 추가로 마련했다. 이를 통해 10여개 품목에 대한 생동성 시험에 착수했다. “한품목 한품목 반드시 식약처가 실시하는 생동성 시험에 통과해야만 했다. 하지만 가장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했던 고혈압약이 통과하는데 실패했다. 다행히 관절염진통제 등 나머지 품목들이 무사히 성공을 거두면서 병원 처방약을 확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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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오송의 넥스팜코리아 생산라인. 이 공장은 설계부터 cGMP급으로 설계됐다.(사진=강경훈 기자)


위기를 겪은 후 회사 매출은 안정적으로 늘어났다. 김 대표는 ‘이왕 하는 것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에 2012년 충북 오송에 300억원을 들여 약 8500(2600) 규모 공장을 지었다. 알약·캡슐약 등 내용고형제 생산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였다. 외부 공기는 헤파필터를 통해 무균 상태로 들어오고 복도 공기는 기압차를 이용해 제조실 안으로 유입되지 않도록 하는 등 ‘cGMP’급으로 건설됐다. 현재 오송 공장 인력 70여명 중 70% 정도가 ‘QC’ ‘QA’ 등 품질관리 관련 인력이다

넥스팜코리아 품질관리가 뛰어난 것으로 소문나면서 위탁생산을 맡기는 업체들도 늘어났다. 이 회사는 현재 약품 20여종을 위탁생산한다. 아무 약이나 만드는 게 아니라 생동성 시험이 까다로운 약에 집중한다. 김동필 대표는 “미량의 원료가 전체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약은 생동성 시험을 통과하기가 매우 어렵다”며 “만들기 어려운 약에 역량을 집중한 덕에 품질관리 분야에서 국내 최고 수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위탁생산하는 대표품목은 진통제 ‘쎄레브렉스’ 복제약이다. 쎄레브렉스는 특허가 풀렸어도 동등한 품질 복제약을 만드는게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100여개의 쎄레브렉스 복제약이 있지만 직접 만드는 곳은 손에 꼽힌다. 넥스팜코리아는 현재 국내 29개 업체의 쎄레브렉스 복제약을 생산한다. 이 회사는 2016년 기준 매출액 312억원을 올렸으며, 이 중 독자 제품과 위탁생산 제품 비중은 각각 60% 40% 정도다


넥스팜코리아는 올해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독자기술로 개발 중인 천연물 성분 관절염치료제이 올해 임상시험에 들어가는 것. 액상의약품 생산라인 증설도 추진 중이다. 공간은 이미 확보했고 설비공사만 앞두고 있다. 김동필 대표는 “복제약으로 시작해 위탁생산으로 영역을 넓히고, 이젠 신약을 개발하는 등 순서를 차근차근 밟아가고 있다”며 “품질을 타협하지 않는 고집으로 국민 건강에 이바지하는 회사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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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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